두산 베어스 사건 사고 이야기 알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두목곰아재입니다.오늘은 두산 베어스 구단의 많은 사건 사고 중 가장 유명한 OB 베어스 시절의 항명 파동 관련 포스팅을 작성해 보겠습니다. 1994년 9월 4일, KBO리그팀 OB 베어스 선수 17명이 시즌도 중 윤동균 감독의 지도 스타일에 반발하여 팀에서 집단 이탈한 사건입니다.
항명 파동 원인
당시 OB 베어스 구단의 감독은 윤동균 님이었습니다. 1992년 OB의 제5대 감독으로 취임할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KBO 리그 선수 출신 1호 감독이 자 베어스 성골 출신 슈퍼스타 감독이었고 팬들은 물론 구단모기업경영진에게까지구단안팎으로 신망이 매우 두터운 사 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다소 부족했던 만큼 당시 중 하위권에 머무르던 OB 베어스를 부흥시킬 것이라는 기대까지는 사실상 받지 못했습니다.
취임 첫 시즌인 1992년은 5위를 기록했으나 다음 해인 1993년에는 정규시즌 3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키며 1987년 이후 6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등 제법 성공적인 출발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젊은 감독(당시만 45세) 이 우승에 도전하겠다던 1994 시즌에는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원인을 찾자면 1993 시즌에는 선발진과 김경원이라는 특급 마무리의 투수진은 굉장했으나 1994 시즌에는 팀 전력의 핵심인 김경원의 부상과 계투진의 붕괴, 선발진의 약화 등 믿었던 투수진마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1995 시즌에 13년 만의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에는 투수진이 정상화되고 거기에다 타선까지 강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감독 이교채 되었다는 점도 고려를 해야 합니다.
1994 시즌은 구단순위 에그 야말 로지 각 변동이 일어난 시즌이었습니다. 만년 하위권이던 쌍방울 레이더스야늘그랬듯이죽을 쑤었지만 같은 잠실야구장을쓰던LG트윈스는사상 최고의 성적을 내면서 인기몰이 중이었습니다.
과거 동네북 신세였던 태평양 돌핀스까지 정말 잘 나가자 윤동균 감독은 초조함에 자주 무리수를 연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다 원년 멤버이자 팀 프랜차이즈 스타이던 윤동균 감독은 '대선배 출신 감독 - 후배 선수들'이라는 위계질서 강조로 인해 선수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이처럼 본인의 출신에 기반한 권위주의적 사고를 가졌던 윤 감독과 자율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던 선임 선수들 간의 갈등은 매우 심했습니다. 그렇다고 중견&신인급 선수들과는 잘 지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었습니다.
당시 신인급 주전 선수 가운데 항명 파동 당시 자리에 남은 선수는 윤동균 감독이 직접 데려온 김민호와 장원진 선수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두산그룹의 고위층과 친밀했던 윤동균 감독은 1992년과 1993년의 공로를 인정받아재 계약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었고, 여기에 고무된 윤동균 감독은 더욱더 선수단을 강하게 휘어잡으려고 하였습니다.
함께 가기 어려웠던 선임 선수들은 대규모로 트레이드 처리 또는 계약 연장을 하지않을구상이었고이런 분위기는 선수들도 슬슬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구상을 했으면 무언가 특별한 방법으로라도 선수들의 신뢰를 얻거나 공감대를 형성했어야 하는데, 시대가 변했음에도 여전히 원년의 군기 잡기를 고수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소통 방면에서도 딱히 잘한 것은 없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슬럼프였던 김형석의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두고 중단시킬까 말까를 두고 은근한 압력을 넣었던 것이 좋은 예입니다. 김형석은 선발 출장명단에서 뺐다가 9회 대수비로 넣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항명 파동 사건의 시작
이렇듯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가 이어지던 윤동균 감독과 선수들과의 불안한 관계는 1994년 9월 4일, 군산 월명야구장에서 열린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후미팅 과정에서 결국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발단은 당시 투타의 리더 격이던 박철순과 김형석이 음주를 하고 들어온 모습 이윤 동균 감독에게 적발된 것입니다. 경기에 패한 데다 분위기도 좋지 않은 상황에 선임이 술을 먹고 들어오자 윤동균 감독은 분노했습니다.
급기야 미팅 자리에서 배트를 들고"오늘은 매를 들어야겠다."라고 말하면서 선참부터 차례로 나와서 선수 전원이 빠따를 맞는 소위 줄빠따를 맞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주장인 김상호가"저희도 최선을 다했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감독님의 지도방식에 도문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맞으면서는 야구 못합니다."라며 항변을 했습니다.
윤 감독이"그럼 나와 야구하고 싶지않은놈들은앞으로 나와라!"고하자 김상호를 비롯하여 박철순, 장호연 등 거의 20명 가까이 되는 선수들이 나왔습니다.
뚜껑이 열린 윤 감독은 옆에 있던 수석코치 최주억에게"최 코치! 이 새 X들 명단 적고 저녁 먹여서 서울로올려보내시오. 내가 책임질 테니까. 이런 새 X들 하고는 더 이상 같이 야구 못해!"라고 말하고는 방망이를 들고
김상호에게 다가가려다 코치들이 뜯어말리는 통에 뒤돌아서서 씩씩거리며 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주장인 김상호를 비롯해 총 17명은 숙소를 나와 선수단을 이탈해버렸습니다.
전주에서 빠져나와 흩어진 선수들은 대전역으로 속속 모여들었고 이 와중에 주장인 김상호를 비롯해 이탈 인원 전원이 최선참인 박철순의 뜻에 따르겠다는 압박 아닌 압박을 가했습니다. 심사숙고한 박철순은 결국 대표로 짐을 떠맡게 됩니다. 다음 열차를 타고 자정 즈음에서 울에 도착하여 잠실야구장에 주차해 놓은 승용차를 빼고, 9월 5일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플라자 콘도에 집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9월 6일 기자들에게 자신들이 이탈했음을 통보하고 윤동균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 회견을 열게 됩니다. 리더격인박철순은자신의 선수생활을 여기서 마감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윤 감독이 옷을 벗으면, 나도 같이 벗겠다"고선언을 하였습니다.
프로 원년 동료 선수로 함께 야구한 형님 같은 사이인 윤동균 감독이 떠나면 자신도 야구를 할 수 없으니 깔끔하게 둘이 책임지자고 말했습니다.
사실 OB 베어스의 프런트는 그들의 이탈을 당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유부단하게 미적거리다가 사태를 키우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고위층의 신임을 받고 있던 윤동균 감독을 퇴진시키기 위해 고의로방관했다는썰이있습니다.
이 썰이 사실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OB 프런트가 다소 수수방관하고 어정쩡하게 나온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선수들을 대규모로 방출 또는 임의 탈퇴시키든지 해서 강하게 수습하든지, 아니면 윤동균 감독의 퇴진을 빨리 이끌든지 했어 야했는데 모든 문제가 결정이 된 것은 항명이 후 열흘이나 지난 9월 14일이었습니다.
그 사이 경창호 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가 반려되고, 윤동균 감독의 신임을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